소설 '봄봄'을 쓴 소설가 김유정, 천재라 칭송받는 시인 이상. 빅브라더의 공포를 쏘아 올린 '1984'의 조지 오웰. 이들에겐 공통점이 하나 있죠. 작가라는 점, 그리고 결핵에 감염돼 사망했다는 점입니다.

사실 결핵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생명을 빼앗아간 감염병입니다. 심한 기침을 하면서 피를 토하는 모습은 결핵의 대표적인 이미지이죠. 이런 악명은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2018년 기준 국내 총 결핵 환자 수는 33,796(10만 명당 65.9), 같은 해 결핵으로 진단받은 환자는 26,433(10만 명당 51.5)에 달합니다. 결핵으로 인해 사망한 사람은 1800여명(2017년 기준)으로, 발생률이나 사망률 모두 후진국수준입니다.

잠복결핵이란 용어, 들어보셨나요? 결핵균이 체내 침투해도 면역체계가 강하면 결핵으로 진행되지 않습니다. 몸 안에 결핵균은 존재하지만 활동하지 못해 기침이나 발열 등 증상도 없고 X선 검사에서도 정상입니다. 잠복결핵 감염자가 기침, 재채기를 해도 공기 중으로 결핵균이 배출되지 않고, 따라서 다른 사람들에게 결핵을 전염시키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보면, 잠복결핵은 면역체계가 약해지면 언제든 결핵으로 악화할 수 있습니다. 일반인의 경우 평생 살면서 잠복결핵이 결핵으로 발전할 확률은 10% 정도입니다. 문제는 인구구성 비율이 높은 베이비 부머 세대가 면역력이 주는 60대에 접어들고 있다는 점이죠. 실제로 우리나라 결핵 환자 절반 이상이 60대 이상입니다. 요즘은 ‘액티브 시니어라고 이 연령대의 사회활동도 활발한데 자칫 결핵균에 감염된 줄 모르다가 가족, 지인 등에 감염이 될 위험이 있습니다. “나는 아닐 거야”란 안일한 생각은 위험합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국민 3명 중 1, 적어도 4명 중 1명이 잠복결핵에 감염됐다고 보거든요. 특히 과로, 스트레스, 영양결핍처럼 면역력이 떨어질 때 결핵균이 나타나기 쉽습니다. 당뇨병을 앓거나 투석하는 환자, 면역억제제를 쓰는 환자도 고위험군에 속합니다.

꼭 기침을 하지 않아도 결핵일 수 있습니다. 결핵균의 90%는 폐에 살지만 10%가량이 척추나 고환 등에 기생합니다. 허리나 고환에 이유 없는 통증이 나타날 때도 결핵 감염을 의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자신이 결핵 고위험군에 속하거나 가족 중에 결핵인 사람이 있을 땐 반드시 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습니다. 결핵균에 감염된 직후에는 잠복결핵이 결핵으로 악화할 확률이 훨씬 크기 때문입니다. 결핵균에 감염된 다음 1~2년 사이 결핵이 나타날 확률은 5%, 이다음 평생에 걸쳐 나타날 확률이 5%입니다. 30세에 결핵균에 감염됐다고 하면 31~32세에 결핵이 나타날 확률이 5%, 평생 살면서 나타날 확률이 5%입니다. 초기 잠복결핵 검사와 치료가 매우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잠복결핵은 X선으로도 볼 수가 없어 진단에 특수한 검사 방식이 적용됩니다. 크게 투베르쿨린 피부반응검사(TST)나 인터페론감마 분비검사(IGRA)가 있는데요, 먼저 TST는 결핵균 항원을 팔에 주사해 2~3일 내 피부가 부풀어 오르는 크기를 보고 결핵균 감염을 확인하는 방법입니다. 대게 1cm 이상 크면 잠복결핵이라 봅니다. 다만, 어릴 때 맞은 불주사(BCG 접종)로 인해 결핵균이 없는데도 있다고 나올 수가 있습니다. 한 살 이후에 BCG를 맞았거나 두 번 이상 BCG를 맞으면 TST 대신 혈액을 채취해 결핵균 감염을 확인하는 IGRA를 받는 게 좋습니다. IGRA는 이론적으로 정확도가 TST보다 높은 반면 비용은 더 비쌉니다. 최근에는 침이나 기관지 조직을 통해 유전자를 파악하는 검사도 대학병원 등에서 활용되고 있습니다.

잠복결핵을 치료하는 데는 약을 먹는데요 이러면 결핵 발병을 60~90% 가량 예방할 수 있습니다. 일단 약을 먹으면 중단하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재발할 위험도 크고, 반복되면 아예 약으로 치료 못하는 슈퍼 결핵균(다재내성 결핵균)이 탄생할 수 있거든요. 잠복결핵 치료제는 이소니아지드(Isoniazid), 리팜핀(Rifampin)으로 하나씩만 먹을 땐 이소니아지드는 9개월, 리팜핀은 4개월 먹어야 하는데 이소니아지드+리팜핀을 함께 먹으면 하루 한번, 90일 먹으면 치료가 끝납니다. 핵심은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먹거나 자기 전에 먹는 식으로 공복에 먹는 겁니다. 결핵약 중에 리팜핀이 고지방 식사에 의해 흡수가 저하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결핵약은 부작용이 다양하고, 또 강하게 나타납니다. 입맛이 떨어지고 토가 쏠리고 피로하고 피부가 빨갛게 올라오고 관절 통증이나 어지럼증, 감각 이상 등 같이 전에 없던 증상이 나타납니다. 이때는 즉시 약을 끊고 주치의를 찾아 상담을 받아야 합니다. 리팜핀을 먹으면 땀이나 소변이 붉은색이나 오렌지색으로 변하는데, 이건 특별한 이상은 아니라 크게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지난 6월 결핵예방법이 개정되면서 병원 등 의료기관이나 산후조리원, 초중고등학교, 유치원, 어린이집, 아동복지시설에서 일하는 사람이 의무적으로 잠복결핵 검진을 받게 된데 이어, 이러지 않을 경우 원장에게 200만원 이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법령이 강화됐습니다. 검사 비용은 무료이니 이런 곳에서 일하신다면 자신의 '권리'를 꼭 챙기시길 바랍니다. 정부는 잠복결핵감염 치료비 지원사업을 통해 잠복결핵 환자의 치료비나 부작용 발생 시 검사, 치료 비용을 모두 부담하고 있습니다. 결핵이 의심된다면 부담 갖지 마시고 입을 가린 다음 즉시 보건소나 주변 호흡기내과 등 병원을 찾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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