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인해 2월 공연 예정이었지만 8월 무대에 오른 국립극단 70주년 기념작품 화전가를 보고 왔습니다. 명동예술극장에서 오는 23일까지 평일 1회. 주말 1회씩 공연입니다. 압축해서 말씀드리면 보다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입니다.

명동은 오래된 미래 같은 공간입니다. 중국인으로 시끌벅적했던 곳은 언제냐 싶게 조용하고, 메인 스트리트에 길게 늘어선 포장마차도 자취를 감췄더군요. 올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받습니다.


국립극단 70주년 기념 작품인 화전가. 처음에 프로그램북이나 설명, 해설을 전혀 모르고 봤을 때는 밭에 불을 질러 양분을 공급해준 다음 일구는 화전인줄 알았습니다. 조금은 궁핍한 이들의 스토리인 줄 알았죠.

근데 전혀 아닙니다. 화전은 화전놀이의 화전으로 꽃 화에 전 전자를 써서 꽃으로 만든 부침을 의미합니다. 화전놀이는 예부터 여성들만 참여하는 꽃놀이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화전가인데 화전놀이는 나오지 않습니다.


1950년 4월, 뿔뿔이 흩어져 있던 김씨 집안의 아홉 여자가 한 자리에 모입니다. 집 안의 중심인 어머니와 고모. 딸 3명. 며느리 2명. 집안일을 거드는 할머니와 그의 딸. 어머니 환갑을 앞두고 다들 모인 거였죠.

전날 다들 모인 자리에서 커피며 설탕, 예쁜 옷과 맛있는 음식이 푸짐하게 나옵니다. 그 하루 동안 일제강점기를 거치고 사상 검증에 시달렸던 50년대 한국인의 이야기에 더해 왜 김씨 집안에 여성밖에 남지 않게 됐는지에 대한 서사가 펼쳐집니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고 돌아오지 않는 이를 기다리는 시간들이 공존합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밤을 거쳐 새벽을 달립니다. 술과 안주와 각자의 인생이 버무려져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며느리는 며느리대로, 자식들은 자식대로 저마다 서사를 꺼내놓습니다.

집안일을 거드는 할머니와 그의 딸 봉언니까지,, 이 연극의 여성 9인은 모두 감초가 아닌 각각 주인공 역할을 담당합니다. 짧았던 화전놀이를 마치고, 모두가 떠난 후 쓸쓸함도 잠시. 상상으로 더해진 전쟁에 이들의 기구한 삶이 온 몸으로 젖어들며 눈물을 뿜었습니다.

연출 이성열은 현재 국립극단의 연출을 주도하는 총감독이라 들었습니다. 규모가 큰 무대 연출을 매끄럽게 소화하는 내공이 멋졌습니다. 극작가 배삼식은 50년대 경상도 사투리를 극에 그대로 사용합니다. 도전과 실험이 아닌 누구나 빠져드는 완성도 높은 작품을 쓰는 일에 성공합니다. 쉽지 않았을건데도 그걸 해냅니다.


예수정 전국향 박소연 배우를 비롯해 모든 배우들은 각각 '특히'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싶을 정도로 하나같이 정말 수준이 높습니다. 우리나라 국립 극단이라 할만합니다. 코로나로 70주년을 기념하는 이 공연이 올라오지 못했다면 정말 아쉬울 뻔 했습니다.

공연 관련 정보를 국립극단 블로그에서 옮겨봅니다

공연시간
평일 19시 30분, 주말 15시, 화요일 쉼
※8.17.(월) 임시공휴일 19시 30분

영문자막 매주 목, 일요일
English subtitles will be provided on every Thursday and Sunday.

소요시간
140분(인터미션 없음)

공연장소
명동예술극장

관람연령
14세 이상 관람가(중학생 이상)

티켓 가격
R석 5만 원, S석 3만 5천 원, A석 2만 원
*할인 관련 증빙서류 미지참 시 차액을 지불하셔야 합니다.

문의 및 예매
국립극단 1644-2003
인터파크 1544-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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